거부권에 멈춘 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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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추락은 본부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이 아닙니다. 전쟁을 막으라고 만든 제도가, 전쟁 당사국의 거부권 앞에서 멈추는 장면입니다. 193개 회원국의 뜻도 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영국 가운데 한 나라가 막을 수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의 이란 폭격과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엔 헌장보다 힘이 앞서는 현실을 드러냈다고 전합니다. 튀르키예는 “세계는 다섯보다 크다”고 했고, 브라질은 안보리의 무기력을 비판했습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도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가 빠진 구조로는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개혁을 요구하는 나라가 거의 전부여도, 권한을 내려놓아야 할 상임이사국이 개혁의 문을 잠글 수 있다는 점입니다. 차기 사무총장 선출조차 P5 한 나라의 반대로 막힐 수 있습니다. P5는 중국·러시아와 미국·영국·프랑스의 익숙한 대립으로 갈립니다. 올해 P5 가운데 분담금을 납부 기한이 속한 달 안에 낸 나라는 영국뿐이라는 대목은 신뢰의 균열이 재정으로 번졌음을 보여줍니다.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닙니다. 북핵과 한반도 유사시 국제 규범이 작동하려면 안보리가 강대국의 거래장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규칙의 기관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거부권 정치가 굳어질수록 한국은 한미동맹을 튼튼히 하면서도 중견국 연대와 유엔 개혁 외교를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유엔의 위기는 다자주의가 필요 없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책임 없는 특권을 그대로 둔 다자주의는 평화를 지키지 못한다는 경고입니다.
한국어 원고와 음성, 근거와 영상 밖 해설은 프로필의 나넥에 정리했습니다. 나우앤넥스트였습니다.
영상 밖 세 가지
90초 영상에 다 담지 못한 제도의 작동 방식과 개혁의 난점을 세 가지로 보충합니다.
거부권은 유엔 전체가 아니라 안보리의 핵심 결정에 걸린다
유엔 총회에는 193개 회원국이 모두 참여하지만 국제 평화와 안전에 관한 1차적 책임은 15개국 안보리에 있습니다. 유엔 헌장 27조에 따라 절차 문제가 아닌 결정에는 상임이사국의 동의가 필요해, P5 한 나라의 반대가 안보리 결정을 막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엔이 멈췄다’는 표현은 모든 유엔 기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안보리의 강제력 있는 대응이 막히는 구조를 가리킵니다.
개혁의 열쇠도 현재 상임이사국이 쥐고 있다
안보리 의석이나 거부권을 바꾸려면 유엔 헌장 개정이 필요합니다. 헌장 108조는 총회 회원국 3분의 2의 찬성과 비준뿐 아니라 모든 상임이사국의 비준을 요구합니다. 개혁으로 권한이 줄 수 있는 나라들이 개혁의 발효 여부도 결정하는 셈이어서, 폭넓은 지지와 실제 제도 변화 사이에 큰 간격이 생깁니다.
사무총장 선출도 안보리 추천을 통과해야 한다
사무총장은 총회가 단독으로 선출하지 않습니다. 유엔 헌장 97조에 따라 안보리의 추천을 받아 총회가 임명합니다. WSJ가 지적한 것처럼 다수 회원국이 특정 후보를 지지해도 P5의 반대로 추천 단계가 막힐 수 있어, 대표성 논쟁은 차기 지도부 선출 과정에도 이어집니다.
근거와 반론
핵심 근거는 WSJ가 보도한 2026년 총회 발언과 유엔 헌장에 적힌 의사결정 구조가 서로 맞물린다는 점입니다. 회원국 다수가 개혁을 요구해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권한과 헌장 개정 요건이 실제 변화를 어렵게 만듭니다.
다만 안보리의 무기력을 유엔 전체의 무용론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총회·사무국·전문기구·인도주의 조직의 기능은 거부권과 동일하지 않으며, 상임이사국의 참여를 유지하는 것이 강대국 간 직접 충돌을 줄이는 안전장치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현재 확인되는 제도적 사실
유엔은 193개 회원국으로 구성되지만 안보리는 상임 5개국과 비상임 10개국으로 운영됩니다. 유엔은 2008년 이후 정부 간 협상 틀에서 대표성, 회원국 범주, 거부권, 안보리 규모와 총회와의 관계를 계속 논의하고 있습니다.
기사에서 더 확인이 필요한 범위
‘거의 모든 회원국이 개혁을 원한다’는 표현은 방향의 공감대를 설명하지만, 각국이 원하는 의석 확대 방식과 거부권 처리안까지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또한 올해 분담금 납부 시점은 신뢰 저하의 신호가 될 수 있어도 유엔 재정의 장기 붕괴를 단독으로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강한 반론
거부권은 불공정하지만 핵보유 강대국이 자신에게 치명적인 결정을 강제로 따르도록 만드는 대신 제도 안에 남게 하는 가격이라는 주장입니다. 상임이사국을 늘리기만 하면 대표성은 좋아져도 거부권 보유국 증가로 교착이 더 심해질 수 있으므로, 의석 확대와 책임 규칙을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 The Wall Street Journal — World Leaders Almost All Agree on One Thing: The U.N. Is Failing
2026년 유엔 총회 발언, 차기 사무총장 경쟁, P5와 분담금 관련 보도의 원문입니다.
- United Nations — Charter, Chapter V: The Security Council
안보리 구성과 표결 요건을 규정한 헌장 23조·27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United Nations — Charter, Chapter XV: The Secretariat
안보리 추천과 총회 임명으로 이어지는 사무총장 임명 규정 97조의 원문입니다.
- United Nations — Charter, Chapter XVIII: Amendments
헌장 개정의 총회 의결·비준 및 모든 상임이사국 비준 요건을 담은 108조의 원문입니다.
-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 Security Council Reform
안보리 개혁을 위한 정부 간 협상의 공식 경과와 현재 의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판단이 달라질 조건
현재 판단은 대표성 확대와 거부권 책임 강화가 함께 가야 유엔의 정당성과 실행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확인 가능한 변화가 나타나면 개혁 가능성과 한국의 대응 우선순위를 다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헌장 개정이 가능한 단일안에 실제 표가 모일 때
총회 3분의 2와 모든 P5가 비준할 수 있는 의석·거부권 개편안이 구체화되면 개혁은 구호에서 실행 단계로 넘어갑니다. 반대로 회원국의 선호가 여러 모델로 계속 갈리고 P5 비준 전망이 없으면 단기 구조 개편 가능성은 낮게 봐야 합니다.
거부권 자제가 실제 분쟁 대응을 바꿀 때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발생한 사안에서 상임이사국이 거부권 사용을 제한하거나 거부 이유를 공개하고, 그 결과 휴전·제재·인도주의 접근에 관한 결의가 통과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선언만 늘고 교착이 그대로면 책임성 개선으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한반도 사안에서 예측 가능한 협력이 회복될 때
북핵 제재 이행, 감시 체계와 위기 대응에서 P5가 최소한의 공통 규칙을 다시 적용한다면 한국이 유엔 틀에 둘 수 있는 신뢰는 커집니다. 반대로 진영에 따라 같은 위반을 다르게 다루면 동맹 억지력과 중견국 연대를 병행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집니다.
English Summary
The U.N.’s crisis is a legitimacy problem: one permanent Security Council member can block substantive council action, while Charter reform requires ratification by all five. P5 influence also shapes the choice of the next secretary-general, and Africa and Latin America still lack permanent representation.
For South Korea, a predictable rules-based council matters in any North Korean nuclear or peninsula crisis. The answer is not to abandon multilateralism, but to pair a strong alliance with middle-power coalitions and practical U.N. reform diplomacy.
출처
James T. Areddy, “World Leaders Almost All Agree on One Thing: The U.N. Is Failing,” The Wall Street Journal, September 22, 2026, 5:22 p.m. ET. https://www.wsj.com/world/world-leaders-almost-all-agree-on-one-thing-the-u-n-is-failing-8740b01d